KT&G, 광고 못하는데…광고대행사 대표가 사외이사

입력 2024-01-22 18:05   수정 2024-01-23 02:26

세계 1위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(PMI)엔 11명의 사외이사가 있다. 모두 글로벌 기업의 현직 사장급 임원이다. 세 명은 구찌, 네슬레, 몬델레즈 등 글로벌 소비재 기업 소속이다. 핵심사업이 된 전자담배 기기 판매를 늘리기 위해 소비재 전문가들을 자문역으로 둔 것이다. 골드만삭스, JP모간 등에 몸담고 있는 자본시장과 투자 전문가들은 PMI 경영진이 미래 전략을 짜는 걸 도와준다.

KT&G의 사외이사 진용은 PMI와 영 다르다. 여섯 명 중 규모 있는 기업의 현직 사장급은 의장인 임민규 SK머티리얼즈 대표뿐이다. 담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협회 회장, 직원이 채 10명도 안 되는 자그마한 엔터테인먼트사 대표, 광고회사 대표가 이사회 자리를 채우고 있다. KT&G는 법적으로 광고를 할 수 없는 회사인데도 그렇다.

PMI 사외이사와 비교해보니…
KT&G는 KT, 포스코와 함께 2000년대 초반에 민영화된 ‘주인 없는 기업’ 3인방으로 꼽힌다. 하지만 나머지 두 회사에 비해 규모가 작고 연관 산업도 없는 탓에 KT&G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. 이게 경영진과 사외이사 사이의 ‘부적절한 공생’을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.

전문가들은 KT&G 이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꼽는다. 한국경제신문이 2001년 민영화 이후 KT&G에서 사외이사로 재직했거나 재직 중인 인사 44명의 직업을 조사한 결과 교수가 17명으로 가장 많았다. 기업인은 12명뿐이었다. 나머지는 법조인 공무원 정치인 연구기관 출신이었다. PMI와 비교할 때 기업인 비중이 현저히 낮다. 그나마 KT&G처럼 이름 있는 기업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기업인은 2009년 이후 삼성중공업 부사장, 여의도 메리어트호텔 대표, 현 의장 등 세 명이 전부다. 김규식 전 기업지배구조포럼 대표는 “KT&G 사외이사 경력을 보면 다른 이유로 선임한 것 같다”며 “광고가 금지된 회사가 광고대행사 대표를 뽑은 게 대표적인 예”라고 말했다.
리스크 못 걸러내는 사외이사
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KT&G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에 문제가 있는 안건이 올라와도 걸러내지 못한다. 최근 논란이 된 1조5000억원 규모의 ‘미국 공탁금(에스크로) 몰취 위기’가 그런 예다. 업계 관계자는 “2021년 12월 KT&G 이사회에 미국 법인의 궐련 제품 잠정 판매 중단 안건이 올라왔다”며 “이때 에스크로로 걸어놓은 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을 지적한 사외이사는 한 명도 없었다”고 했다.

이에 대해 KT&G 관계자는 “법규 위반에 대한 통보나 제재를 받은 사실이 없는 만큼 공탁금은 2025년부터 순차적으로 돌려받을 것”이라며 “2021년 12월 이사회 기록은 확인해 줄 수 없다”고 말했다.

KT&G가 공채 출신으로 경영진을 꾸리는 ‘순혈주의’ 시스템을 구축한 것에도 문제를 제기한 사외이사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. KT&G는 2001년부터 최근까지 KT&G 주식 1100만 주와 1000억원가량의 현금을 잘게 쪼개 KT&G 전현직 임직원들로 구성된 각종 재단·기금, 우리사주조합에 무상으로 넘겨 최대주주(보통주 기준 9.6%)로 올렸다. 이런 안건이 꾸준히 이사회에 올랐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고 KT&G는 무상증여를 주주총회 승인 없이 집행했다. 이런 방식으로 KT&G 전현직 임직원을 사실상 최대주주로 세우니 ‘사장=공채 출신’이란 공식이 굳어졌다.

산업계에선 KT&G가 비전문가들을 사외이사로 앉힌 건 사실상 회사가 내민 안건에 찬성표만 던지는 ‘거수기’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한다. 업계 관계자는 “2015년 취임한 백복인 사장이 3연임하는 동안 KT&G 지배구조를 외풍에 덜 흔들리게 했지만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를 거수기로 전락시켰다”며 “최근 불거진 ‘미국 공탁금 몰취 위기’는 사외이사의 핵심 기능인 ‘위기 알람’과 ‘경영 조언’을 내버린 대가”라고 말했다.

하헌형/박동휘 기자 hhh@hankyung.com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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